작성일 : 09-11-20 14:42
거친 건설업계 보수.보강 섬세한 여성손길 (2007.04.04)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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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함께]

현장에서 만난 中企人 : 이혜경 한국피엔알건설 사장
거친 건설업계 보수·보강 섬세한 여성 손길
이혜경 한국피엔알건설 사장(왼쪽)과 직원들이 보수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1994년에는 성수대교가 끊겼고 이듬해엔 삼풍백화점이 폭삭 무너졌다.
콘크리트를 쌓아올리기만 하고 한 번 점검조차 제대로 안 했던 결과였다.
정부는 부랴부랴 '시설물유지관리 특별법'을 만들었다.
그 때가 96년의 일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 셈이다.
이 때 정부의 움직임을 주목한 한 여성이 있었다.

이혜경 한국피엔알건설 사장(50)이다.
'노가다판'으로 불리는 건설업계에 뛰어든 지 15년이 지났을 때였다.
정부가 특별법을 만든다는 소식에 그의 사업가 기질이 발동했다.
다니던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외환위기를 목전에 둔 97년 10월 회사를 설립한 것. 사업 내용은 보수·보강 전문업체로 잡았다.
외환위기는 그의 사업을 승승장구하게 만들었다.

지난 2일 서울 방이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 사장은 마침 서류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현재 회사가 맡고 있는 서울 동호대교 보수공사에 관한 각종 서류였다.
이 회사는 많은 하중을 견뎌야 하는 다리의 낡은 부분을 보강하고 균열이 생기지 않았는지 점검하는 공사를 맡고 있다.
서류철마다 꼼꼼하게 메모를 적고 여러 색깔의 메모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그의 꼼꼼함을 짐작케 했다.

 이 사장은 대학 전공(유아교육학)보다는 힘들지만 창조적인 건설 분야에 매력을 느껴 막노동판을 일터로 선택했다.  이 사장은 초기 풋내기에서 지금은 건설 현장의 '여걸'로 변신했다.
이 사장은 "대학 졸업 후 선친의 지인이 경영하던 건설사에서 어깨 너머로 배운 건설업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연세기업과 한국종합그라우팅 등 전문건설 업체에서 15년 동안 건설 업무를 배웠다.
이 사장은 "세무 회계 경영 현장관리 등 실무에 대해 회사에서는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아 답답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중소기업의 조직 운영에 한계를 느꼈고 결국 과감히 사표를 냈다.

여성으로서 건설업은 쉽지 않았다.
학연·지연으로 로비하는 관행 속에서 그는 회사를 알리려고 발주처 문턱이 닳도록 숱하게 돌아다녔다.
이 사장의 열성은 인천 신국제공항과 서해안고속도로 등 굵직한 사업을 잇따라 따내는 성과를 올렸다.
특히 2002년부터 2년간 진행된 경부선 고속철도 터널 공사는 이 회사의 뛰어난 기술력을 가장 잘 보여준 공사로 꼽힌다.

시속 300km의 KTX가 일으키는 바람과 진동을 일제시대 뚫린 터널들이 감당하지 못해 이뤄진 공사였다.
터널 공사는 수시로 기차가 쌩쌩 지나가 쉽지 않은 공사다.
하지만 그는 터널을 구간별로 나눠 3시간 만에 해당 구간을 전부 복구하는 방식으로 기차 통행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보수 공사를 해냈다.

일단 기술력을 인정받자 회사는 꾸준히 성장했다.
1999년 30억원 수준이던 매출액이 2003년에는 85억원으로,지난해엔 130억원으로 늘었다.
매출액의 3~4%를 R&D(연구개발)에 사용할 만큼 기술 개발에 공들인 성과였다.

보유 특허만도 15개나 된다.
건교부가 2005년 발주한 '위험시설물에 대한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 사업도 수주했다.
이 사업에 참여한 30여개 기관과 회사 중 보수·보강 전문회사는 이 회사뿐이다.

회사의 올해 매출 목표는 150억원 선. 이 사장은 "지금까지와 달리 앞으로는 '정기 점검'을 넘어 화재 수재 등 극한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시설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순식간에 영상 1500도까지 올라가는 터널 화재에 대응할 수 있는 내화 모르타르 공법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