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2-18 11:19
....[㈜피엔알시스템] 인터뷰-이혜경 대표 ‘건설 여걸’의 꿈은 (2009-08-12)건설경제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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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을 굳이 성별로 분류한다면 남성 쪽에 가깝다. 척박한 대지에 우뚝 솟은 건물이나 대지와 대지를 연결하는 도로·교량은 강인하고 투박한 남성상을 연상케 한다. 때문에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남자가 대부분이다.
이런 건설업에 대한 일반 인식을 깬 여성이 있다. 이혜경 피엔알시스템 대표. 1970년대 말 아르바이트로 건설업계와 인연을 맺은 그는 30여년 건설인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1997년 그가 일으킨 피엔알시스템은 오는 8일 창립 12주년을 맞는다. 남자들의 틈바구니에서 그가 얼마만큼 버텨왔는지를 말해 준다.

활기찬 제스처에 다부진 말솜씨. 여장부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는 "조직을 관리하고 회사를 경영하는 데는 남녀 구분이 무의미하다. 오히려 특유의 섬세함으로 여성이 조직관리를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안전관리 점검을 데이터베이스로 체계화하는 등 보수·보강업에도 IT기술을 접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건설 및 토목의 보수·보강을 시스템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사업의 비전을 제시했다.


유아교육 학도에서 건설인으로
지금은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지만 사회 초년병 때만 하더라도 건설은 그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학 전공은 유아교육과. 당시 유치원 경영의 꿈을 꿨던 그는 대학 졸업 후 조그만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건설업 입문은 우연이었다. "1979년, 당시 아버지가 서울 하월곡동 동장이었다. 낙후된 상수도 개·보수 작업을 진행하는데 전문 건설업을 하는 아버지 친구분이 공사를 맡았다. 주판을 조금 놓을 줄 알았던 내가 그 친구분의 일을 도와준 것이 계기였다. 공사가 끝난 뒤에는 아예 친구분의 회사로 들어갔다. 이게 30년이 됐다."
회계와 내역서 정리 등의 일을 봤다. 컴퓨터가 없어 웬만한 책 분량의 내역서도 일일이 수작업으로 정리해야 하는 시절. 아직도 오른쪽 가운뎃손가락에는 당시 굳은살의 흔적이 남아 있을 정도로 공들여 일했다. 덕분에 그의 꼼꼼한 일처리는 업계에 금세 소문이 났다. 관급 공사 때 구청 직원들은 그가 작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역서에 도장을 찍을 정도였다.


IMF 위기 때 창업
연세기업과 한국종합그라우팅 등 전문 건설업체에서 15년 동안 건설 업무를 배웠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조직 운영에 한계를 느꼈다. "틈틈이 건설업법·노동법 등을 공부했지만 경영·현장 관리 등 실무에 대해 회사에서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여직원의 한계랄까. 이쪽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인지 고민했고 답답했다. 그러다 차라리 내가 회사를 차리겠다고 마음먹었다."
때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인해 정부에서 시설물유지관리특별법을 만들었다. 늦은 감이 있었지만 콘크리트 구조물의 보수·보강 사업이 본격화하는 길을 연 것이다.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1997년 8월 자본금 3억원으로 한국 피엔알그라우팅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얼마 되지 않아 IMF외환위기가 터졌지만 위기는 그에게 또 다른 기회였다.

 
건설 여걸의 등장
짐작은 했건만 여성으로서 건설업은 쉽지 않았다. 학연·지연으로 로비하는 관행 속에서 그는 회사를 알리려고 발주처 문턱이 닳도록 숱하게 돌아다녔다.
성공의 열쇠는 보수·보강 업무의 체계화와 기술 개발이었다. 다른 업체와는 달리 피엔알그라우팅은 콘크리트 구조물 개·보수 설계를 서비스하면서 준공까지 드는 견적을 제시했다. 발주자로선 설계에 대한 용역비를 절감할 수 있을 뿐더러 한눈에 개·보수사업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많은 물량이 쏟아졌다. 교육청에서는 낙후된 학교의 개·보수를 집중적으로 발주했는데 수도권의 물량을 그의 회사가 거의 도맡다시피 했다. "창업한 뒤 2~3년 동안 학교 건물의 보수 사업에 집중했다. 1년에 50~60개 학교를 했다."
한편으로는 기술 개발에 투자했다. 창업 이듬해인 1999년 피엔알건설재료연구소를 설립, 독자적 신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주변에서는 "조그만 회사가 무슨 기술연구소를 갖고 있느냐"며 비아냥댔지만 뚝심으로 버텼다. "당시 보강·보수업체들은 외국의 기술을 들여오는 데 그쳤다. 장기적 안목에서 기술의 국산화가 필요했다. 건설 분야에도 벤처 개념을 도입, 신기술 개발을 서둘렀다." 현재 피엔알시스템이 갖고 있는 기술 특허 및 신기술은 15개에 이른다.


기술제일주의
학교 건물의 보강·보수가 끝난 뒤 터널·교량 등으로 사업의 지평을 넓혔다. 큰 규모의 공사를 따기 위해 실적이 있는 회사를 인수하기도 하고, 관련 기술을 갖고 있는 회사와 기술 제휴를 하기도 했다. 회사도 꾸준히 성장했다. 1999년 30억원 수준이던 매출액은 2003년 85억원, 2004년 130억원으로 증가했다.
순탄한 행보를 보이던 회사는 창립 10주년인 2007년 위기를 맞았다. "모든 악재가 한꺼번에 터졌다. 시장이 악화했고, 돈이 묶이면서 재정이 궁핍했다. 그동안 없었던 인사사고까지 겹쳤다. 사업이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어려움은 그를 더 단련시켰다. 난관 극복을 위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2008년 11월 회사가 개발한 ECC-내화보수공법은 모든 콘크리트 구조물의 내구성과 내화성을 높이는 획기적 기술이었다. 영상 1500도의 고열에도 콘크리트를 1시간 이상 버틸 수 있게 하는 이 공법으로 회사는 올해 매출 100억원 재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앞으로 내진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그는 "신기술을 개발하는 중소업체에 대한 정부 지원이 약하다. 중소업체의 경쟁력은 기술력 밖에 없다. 기술 개발 업체를 지원하고 우대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보수·보강업의 시스템화
창업 전 15년간 다녔던 건설회사가 기술 개발 소홀, 본사 관리 부재로 문을 닫는 것을 경험했던 그는 회사에 기술·인재·서비스 중심의 경영을 접목시켰다.
그는 보수·보강업의 시스템화를 주장한다. "체계화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시설물의 안전을 최대한 담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병이 난 뒤 병원을 찾는 것보다 미리 그 병을 예방하는 것과 같은 맥락. 회사 설립 초기 수주·시공 등 모든 프로세스를 데이터베이스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주장하는 시스템화는 회사 이름에도 담겨 있다. 건물의 균열을 보수하는 것을 뜻하는 피엔알그라우팅으로 출발한 회사명은 피엔알건설을 거쳐 피엔알시스템으로 진화했다. 피엔알(PNR)은 사람(people)과 리노베이션·리모델링·리페어·리허빌리테이션 등 개·보수의 총칭을 의미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독려할 것
그는 자신을 "무늬만 여성"이라고 표현했다. 남자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은퇴 후 실버와 육아를 접목시키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뒤를 잇는 후배 여성들에게 좀더 나은 사회적 환경을 제공하고 싶어서다. "직장 여성들은 가정과 보육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한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 요양 시설에 육아 시설이 한 공간에서 이뤄진다면 직장 여성의 부담을 덜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꿈이 이뤄진다면 여성 CEO라는 단어는 '보통명사'가 될 듯하다.


※ 글=정회훈기자hoony@ 사진=안윤수기자 ays77@ / 09.08.06
    출처 : 건설경제 (http://www.cnews.co.kr)